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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목사는

정명석 목사(기독교복음선교회, 세칭JMS), 그는 누구인가? 기독교복음선교회(세칭 JMS) 정명석 목사는 기독교복음선교회의 총회장이며, 충청남도 금산군에 소재한 월명동 수련원의 창립자, 시인이기도 하다. 정명석 목사가 걸어온 길 1945년 전라북도 금산군(현 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 월명동에서 출생 1966년 군입대(백마부대) 1966년 베트남 1차 파월 1968년 베트남 2차 파월 1969년 9월 화랑무공 훈장, 인헌 훈장 등 4개 훈장 수여 1981년 3월 MS선교회 창설(대표 취임), 애천교회 창립 1983년 11월 웨슬레 신학원 졸업, 전국 8개 도시 교회 설립 1986년 9월 예수교 대한 감리회(진리) 창립 1989년 《영감의 시》 1집 출간 1990년 《하늘말 내말》 1집 출간 1991년 3월 자연수련원 월명동 개발 착공, 《비유론》 출간 1995년.. 더보기
정명석 총재 그는 어떤 리더인가? 기도하는 지도자 정명석 총재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부터 매일 이른 새벽을 깨워 무릎으로 수 시간을 기도했습니다. 세계와 민족, 사회와 정치를 위해 고통받고 상처받은 자들의 회복을 위해 악과 죄로 탄식하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는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증거하는 사람 정명석 총재는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생생한 묵시를 증거해왔습니다. 종말과 영생 등 비현실적, 비사회적인 가르침을 타파하고 신앙과 생활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인적과 내면이 성장하는 이타적인 행복을 깨우쳐 왔습니다. 정명석 총재의 깊이로운 통찰의 메시지는 진리를 알고자 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참뜻을 알게 함으로 전인적 변화를 이루는 씨앗이 되어 왔습니다. 소통하는 지도자 정명석 총재는 소통의 사람입니다. 세계 .. 더보기
<나는 신이다> 정명석 설교 영상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목사의 설교 영상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섬기는 사람들은 절대로 (우상들을 가르키며) 이렇게 섬김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겨야지 왜 나를 섬기냐고 선생님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나 섬기지 말고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도 섬기고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더보기
정명석 해외 도피, 과연 사실인가? 정명석 해외 도피, 과연 사실인가 정명석 목사의 해외 도피는 사실이 아닙니다. 정명석 목사는 1999년 이전부터 한국에서만 복음을 전할 것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ᅠ복음을 전한다는 이야기를 해 왔고 그 말대로 1999년 1월, 해외로 출국했습니다.ᅠ 아래의 내용은ᅠ정명석 목사의 설교 중 일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 1998년 12월까지 월명동 돌 조경을 다 쌓고, 마지막으로 행사하고, 하루도 못 쉬고 한해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유럽으로 떠나자" 하여 떠났습니다. ...... 주님은 나를 통해 21년 동안 한국을 중심으로 신앙의 새 역사를 펴나가게 하셨습니다.ᅠ 그러다가 1999년부터는 유럽에 나가서 시대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럽, 세계 각국의 제자들을 모아 평화 대회를 하게 하셨습니.. 더보기
생명은 생명으로 - 월남에서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7] 랜턴을 머리 쪽에 대고 머리를 툭툭 치니 초긴장하여 고개를 드는데 눈만 반짝였다. 적을 보고 담대한 것이 전쟁터에서 군인의 기본 정신이기에 담대했다. 월남말로 “여 따이렝” 하며 손들라고 소리를 질렀다. 적이 손을 들고 쭈그리고 앉았다. 구둣발로 옆구리를 툭툭 차면서 겁을 주었다.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손으로는 랜턴을 비추면서 몸수색을 하다, 약간 기미가 이상해 먼저 적의 양손을 뒤로 결박하여 꽁꽁 묶어버렸다. 적들은 사생결단하는 시간이라 별 모사를 다 쓴다. 다 죽은 척하다 자기 품속에 가지고 다니는 시퍼런 대검으로 쿡 쑤시는 수도 있다. 적을 잡아도 적을 죽일 때까지는 1:1일 때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몸을 수색하니 수류탄이 나왔다. 그리고 탄띠, 즉 허리띠에는 권총집만이 보였다. 총은 어디.. 더보기
생명은 생명으로 - 월남에서1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6]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 험난했다고 다들 말한다. 나 역시도 나의 삶의 길이 고달팠고 괴로웠으며 또 다시 걷고 싶지도 않을 뿐 아니라, 걸으려 해도 불가능한 험난한 삶의 길이었다. 한 때는 너무 어려워서 삶을 포기하고 살았던 때도 있었다. 의식주 문제와 환경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음의 좌절이 문제였다. 따가운 태양 빛이 얼굴이 그을리도록 내리쬐고, 먹장구름에 장대같은 비가 쏟아진다. 67년 4월, 나의 고향 하늘이 아니라 이국 땅의 전선의 하늘이다. 말로만 듣던 피비린내, 또 말로만 듣던 전투, 전쟁터, 말로만 듣던 총격전…이제는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그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신음과 고통, 그리고 삶의 소망, 생명의 가치성, 죽음, 인생의 허무, 신의 의지 등과 모두 한자리에서.. 더보기
꿈과 현실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5] 사람은 모두 저마다 꿈과 현실이 있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 꿈과 현실이 있다. 하지만 꿈은 많아도 그것을 현실화 시키기는 쉽지 않다. 흔히 그 꿈들이 망상이나 환상에서 끝나고 마는 일이 너무 많다. 지금 내가 하는 꿈 이야기는 잠꼬대 꿈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싱싱한 소망과 생각의 꿈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는 꿈이 많고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 꿈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며 살아보았지만 그 꿈은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꿈을 이루기는커녕 눈물의 산을 넘게 되고, 눈물의 강을 건너게 되었으며, 젊은 날 홀로 긴 인생의 밤길을 걸으니, 소쩍새의 슬픈 울음 소리가 내 노래가 되고, 내 삶도 그 새와 같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소쩍새 울음 소리를.. 더보기
내 생각과 다른 하늘의 생각 [나만이 걸어온 그 길 #24] 칠흑같이 캄캄한 밤길이었다. 새벽 2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성황당 고갯길을 하늘과 같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제의 발길이 아직도 끊이지 않은 셈이다. 길의 좌우에는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심은 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노방전도를 하고 오는 길은 너무나도 벅찬 발길이다. 돌아오는 길에 내 고향 성황당 고개를 올라오면 항상 나는 한잠 자고픈 마음이 든다. 아마 내 집이 시야에 들어오니 포근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캄캄한 끝에 빗줄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우산도 없는데 어둠 속에 비가 꽤 쏟아졌다. 다 왔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빨리 뛰고 싶지만 칠흑같이 캄캄한 밤이라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늘상 다니던 길이라 짐작으로 논두렁길까지 더듬어 왔다. 그 때 앞을 못 보는 봉사가 얼마나 불.. 더보기